산중미인!


1. 산중미인

이별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어렵사리 찾아 온 만남도 이별하는 순간은 너무나도 빠르며 쉽다생각하는 사람들이 살아간다. 순간적 만남도 운명과 연결되면 이별을 넘어선 영원이 되리라 생각하는 사람도 나타나게 되었다.

 

2. 산중으로

 의사가 말했다.
당신은 얼마 살지 못합니다.”
오래 살아야 3개월입니다.”
"
선생님! 더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나요?" 린이 물었다.
"
늦었습니다. 속이 다 망가졌어요! 빨리 오셨어야죠!"  안경을 쓰고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이 아쉬운 말을 건넸다.
린은 체념했다
. 더 이상 매달리지 않았다. 어차피 살고 싶은 세상이 아니었다. 무작정 기차에 오르고 내려서는 모르는 행선지의 버스를 탔다. 낯선 정거장에서 내려 다시 멀리 가는 버스를 탔다.

 밀려오는 통증에 병원에서 준 약을 삼켰다. 어지러움과 치미는 구토증 때문에 모르는 곳 산중에 서둘러 내리고 말았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였던 터라 썩어버린 몸뚱이를 아무렇게나 내동댕이 치리라 생각했었다
.
그러나 해가 지고 어둑해진 산길을 걷게 되었을 때 썩어버린 몸뚱이의 린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
누군가 자신을 잡아서 험히 다룰 것 같은 무서운 생각과 함께 등에서 땀이 흘렀다
. 봄을 맞이하는 바람은 차갑다. 숲속의 찬 기운에 린의 옷은 낮보다 훨씬 얇아지고 말았다. 찬 기운에 웅크려진 몸은 린을 두려움과 나약함으로 내몰아갔다.

리서부터 자동차 불빛이 있었다. 그 불빛은 구부러진 길을 따라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린을 잡으러 오고 있었다.
병원에서 암에 걸린 엄마를 밤낮으로 간호했으며 전 재산인 전세 보증금을 털어주며 엄마를 살리려 했었다
. 그러나 하루가 말라가는 린의 상태를 염려한 엄마의 주치의사가 진찰을 권하더니 린이 보는 앞에서 린의 썩어버린 몸을 증명시켜 버렸다.

지치고 야윈 사람 린이 옥상에서 차들이 오가는 세상을 바라보았다.
린이 병원 옥상으로 자주 가는 것을 본 의사의 언질을 받은 경비는 린이 밤에 옥상에 서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
경비는 옥상으로 가는 출구를 봉쇄하고 경계의 눈을 거두지 않았다
.

린은 병간호하며 엄마의 병이 낫기를 바랐지만, 자신이 암에 걸린 사실을 알았을 때 엄마와 다시 세상을 살아보리라는 희망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린은 더 이상 엄마와 세상을 감당할 수 없었다
.
곰 같은 들짐승이 잡아가도 낯선 자동차 불빛이 잡아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 그러나 몇 번의 불빛이 다가왔을 때 린은 두려워 서둘러 나무숲속에 숨었다. 다시 불빛이 다가왔을 때 린은 불빛을 피할 겨를 없이 쓰러졌다.

 

3. 만남

 동욱은 꿈을 꾸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좋은 대학을 가고 학비를 충당했으며 기술을 익혔다. 그리고 마침내 촉망받는 의사가 되었다.
세상에 동욱이 못 고치는 병이 없다
. 못 고치는 병이 없다고 생각했다. 동욱은 치열했으며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동욱이 못 고치는 병이 없을까?

 동욱은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지금까지 쏟아 부은 전력의 열정과 꿈이 모두 깨지고 무너졌다는 것을 느꼈다. 병원에서 도망쳤다. 동욱은 목적없이 무작정 자동차를 몰았다. 분노가 그를 병원에서 도망치게 하였다. 서울을 지나고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의 아무 길을 달리고 있었다.

동욱은 린을 만났다. 욱이 구불거린 산중의 도로를 달리다 불빛 앞에서 쓰러진 린을 만났다.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기에 옷을 뒤져보니 신분증과 약이다.
가지고 있는 약병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약과 같다
. 쓸모없는 약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났다.

 

4. 산중 운명

 동욱이 여자사람을 보았다. 여자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예쁜 구석이 있는 얼굴이다. 예쁜 구석이 있는 여자를 차에 실었다.
어차피 놔두면 길에서 죽을 목숨이고
오래 살지 못할 목숨이다.  미약하게 뛰고 있는 손목의 박동이 '린은 살아있다' 말하고 있다.

포기한 동욱의 세상에 들어온 뜻밖의 여자가 동욱의 머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놨다. 운전하는 동욱의 심정에 상상하지 못했던 수많은 생각이 떠올라 지나가고 있었다.
동욱은 생각하기를 '어쩌면 이것은 운명이 아닌가' 생각하였으며 어느 날의 동화 같은 사랑과 숙명적인 연애를 상상하게 하였다
. 옆에 앉아있던 린이 구토하기 시작했다.
동욱보다 한 발 앞선 지독한 암 증세의 악화를 내보였다
. 동욱이 차를 멈추고 린의 등을 두드리며 린을 살리기로 감히 마음먹었다.  동욱이 여자의 구토 묻은 입가를 닦아주며 자신이 의사라 말하였다.

낯선 이의 과도한 친절과 자신의 빈틈을 들킨 자존심이 상했는지 괜찮다하며 밤길을 걷겠다는 린을 자의반 타의반 끌어안고 말았다.  
동욱이 말했다
. "이대로 가면 죽을 거다! 살려 줄 테니 믿어라"  하며 부둥켜안았다. 처음 보는 남녀가 산중에서 서로 각자의 것이 되었다.  어지럼증과 산속에서 생겨버린 두려움은 세상을 포기한 린임에도 불구하고 동욱을, 동욱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하게 하였다.

 동욱은 잘 생겼다. 그의 목소리는 믿을만하며 달콤하다. 린이 동욱의 차에 올랐다. 동욱은 린을 차에 태우고 차의 시동을 켰다. 차의 라이트 불빛이 켜졌다.
동욱의 시선이 미러를 통해 린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 동욱의 발이 침착하고 부드럽게 페달을 밟았다. 동욱과 린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5.살아야 할 이유

 린은 하얀 블라우스에 세레니티 컬러 정장을 입었으며 동욱은 파란 줄무늬 드레스 셔츠에 인디고 정장을 입었다. 동욱의 자동차는 방향을 바꾸어 휴게소를 지나고 익숙한 톨게이트를 지나 산뜻한 음식점에 멈추었다. 동욱이 린의 자리를 살피고 음식을 주문했다. 동욱이나 린에게 특별한 시간이며 처음이며 한번밖에 없었던 시간이었다. 예정에 없었고 예정된 시간이었다.

린이 말했다."나는 얼마 살지 못합니다.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기에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나요? 내가 불쌍한가요? 어떻게 하다 보니 당신을 따라오게 되었지만, 나를 살려주겠다고 당신은 말했으나 그런 약속은 사실 기대하지 않아요!"
"여기서 서로 갈 곳을 가는 것이 낫겠어요
!"

동욱이 주머니에서 약병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이건 암에 걸린 나의 약병입니다. 당신도 암에 걸렸지요? 아까 구토하는 것을 보니 말기로 접어든 것 같은데....”
"나도 이 세상에서의 시간이 많지 않아요!"
동욱이 약병 하나를 더 꺼냈다
. 당신이 내 차 앞에서 쓰러졌을 때 주머니에서 발견했어요!  같은 약인데 운명 같지 않나요! 그것도 첩첩산중에서 정해진 약속 없이 이렇게 만났는데!...."

동욱이 신기한 듯 웃는데 산중에서 남녀가 만난 모양이 린에게도 운명 같고 우습기도 하였다. 말쑥한 사내가 자신과 같이 곧 죽을 지경인데 웃는 모습에서 그가 느끼는 죽음이나 좌절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그도 곧 죽을 거라는 생각에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물끄러미,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동욱이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여 음식을 입에 넣었다
. 린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
린이 물었다
! "그것뿐인가요!"
동욱이 말했다
. "당신 때문에 더 살고 싶어졌어요!"

잠시 후 린은 일어나서 동욱이 앉아있는 의자로 다가갔다. 여자 아가씨의 구두소리가 또각또각 다가와 동욱의 등 뒤에서 멈췄다.
동욱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차마 돌아보지 못했다
.
떨고 있는 듯한 동욱의 어깨에 린이 두 팔을 내려 걸치고 동욱의 귀에 가까이 말했다
."이건 어떠한가요!"
동욱이 어깨에 걸쳐진 린의 손을 잡아 가슴에 대며 말했다
.
"내 마음입니다".
 콩닥콩닥과 두근두근이 만났다. 콩닥콩닥과 두근두근이 첩첩산중에서 만났다.

 

6. 빛과 같은 사람들

 가슴속 폐를 자르고 간을 잘랐다. 동욱과 린은 서로 때문에 더 살고 싶어 장기들을 잘라내고 구토를 견디었다.

 빛과 같은 사람!  린에게 빛과 같은 사람이 말했다. '당신 때문에 더 살고 싶어 졌다고' 당신을 살려주겠다고!"  린이 빛과 같은 사람의 손을 잡았다.
그때부터 구토와 썩은 고통을 견뎠다
.  두근거리는 가슴이 린을 수술하고 기다리고 안아주었다.
콩닥거리는 심장이 절반의 장기를 가지고 두 다리로 동욱에게 걸어갔다
.
장기가 무슨 소용인가
!
심장이 동욱과 살고 싶어 한다
.

하얀색 블라우스에 세레니티 컬러 정장의 린은 동욱의 눈에 눈부시다.
동욱의 아름다운 신부다
.

속의  뛰는 심장밖에 없는 린을 기다린 동욱은 린의 빛이다.

</산중미인!> 오재택